살아서는 투명하고 죽어서는 순백색을 띠는 물고기가 있다. 사백어(死白漁), 죽을 사(死) 흰 백(白),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확연히 달라지는 생리 특성을 이름으로 표현했다. 시나브로 봄이 저물고 여름으로 넘어가는 날 사백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통영 말로 사백어를 뱅아리, 병아리라 부른다. 사백어 대신 뱅아리라 해야, '아, 그거~'하며 반가워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토속적인 '입말'인 뱅아리는 구수하고, 정감 어린 느낌이다. 반면 한자로 쓴 '글말'인 사백어는 다소 관념적인 느낌이 든다. 직관적, 감각적인 느낌과 지식적이고 설명하는 듯한 느낌의 차이도 있다. '입말'은 구어체 표현을 말하고, '글말'은 문어체 표현을 말하는 '입말다운' 우리말이다.사백어는 1년살이다. 파도가 없는 깨끗한 연안이나 강 하구에 살며, 봄이 되면 강 하류에서 산란한다. 수컷이 작은 돌 아래 모랫바닥에 산란실을 만들면 암컷이 300여 개의 알을 산란하고, 수컷이 수정시킨다. 2주가량 지나면 새끼들이 부화하게 되고, 제 일을 다 마친 암컷과 수컷은 별나라로 간다.경남 해안 지역에 사는데, 일본과 중국 연안에도 서식한다. 예전엔 광도천과 영운리를 비롯해 개울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엄청 귀한 몸이다.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뱅아리라는 이름만으로도 반가운 이들이 많겠지만, 이미 통영에선 만나기 어렵다. 거제 동부면 산양천에 가야 만날 수 있다. 구천저수지와 동부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짠 바닷물과 섞이는 곳이다.누군가에겐 추억이고, 누군가에겐 신비한 물고기. 사백어를 찾는 이들을 위한 식당이 동부면사무소 앞에 있다. 3월 중순, 봄기운이 무르익을 무렵 사백어가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인이 소집령을 내렸다.그렇다. 통영 사람들은 사백어가 '피었다'고 한다. 그 느낌이 어떠했길래, 옛사람들은 피었다고 말했을까. 봄, 야산에는 바알간 진달래가, 기수역 갱물에는 뱅아리가 피어오른다. 바람을 타고 왔을까, 물결을 타고 왔을까, 가슴 언저리가 간지럽다.봄이 오니 사백어를 먹는 뜻은 톡톡 터지는 식감에 있지 않고, 남몰래 귀한 음식 먹는 재미도 아니다. 오로지 봄을 먹기 위함이다. 겨울의 끝자락, 서둘러 봄을 입는 이도 있고, 시로 읊조리는 이도 있고, 그림으로 품는 이도 있다. 하지만 봄을 먹는 것만큼 귀하고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봄이 시작되면, 갱물에서 떠올린 뱅아리를 먹을지, 산에서 딴 진달래 화전을 먹을지, 깊은 바다에서 길어 올린 도다리쑥국을 먹을지 때 이른 고민이 아지랑이보다 먼저 피어오른다.먹을 게 귀하던 시절, 겨우내 부족했던 비타민과 단백질을 섭취하기에 이만큼 좋은 음식이 없었다. 딱 좋은 제철 음식 3종 세트다. 물론 '좋다'는 건 인연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사철 내내 영양과잉 상태로 살아가는 우리에겐, 봄을 먹는 데에도 절제해야 한다. 봄을 맛보는 느낌 정도면 족하지 않을까. 보릿고개 시절엔 잘 먹는 게 건강이었지만, 지금은 덜 먹는 게 건강이니까.삶터 곳곳에서 쉽게 만나던 생명붙이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수만 년 이어온 생태계가 파괴되고, 거기에 기대어 수천 년 이어온 문화가 사라지는 과소비의 시대다. 많이 차리고 푸짐하게 먹는 건 건강에도 나쁘고 자연에도 나쁘고 사회경제에도 나쁘다.사백어회는 뚜껑이 덮인 채 나왔다. 뚜껑을 여는 순간 사백어들이 펄떡이는 소리가 들렸다. 병아리 울음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은. '아, 이래서 병아리라 불렀겠구나'. 몸길이가 5센티가량 되는데 새카만 눈이 돋보인다. 암컷은 7센티 정도로 수컷보다 크다고 한다.꿈틀대는 아이들을 먹자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잠시 숨을 돌렸다. 첫술을 입에 넣고서 이 맛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일행의 한마디가 나를 그릇에서 구했다. "사백어는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봄을 먹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