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은 양산신문이 첫 발을 내디딘 해이다. 동시에 오늘날의 양산을 만든 여러 변화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당시 양산은 아직 군(郡) 단위 행정구역이었고, 인구 38만 도시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역 곳곳에서는 미래 양산의 모습을 바꿀 변화들이 하나둘 시작되고 있었다.그해 양산에서는 물금면사무소가 새 청사로 이전했고, 시외버스터미널이 현재의 구 터미널 부지에 자리를 잡았다. 또한 범어주공1차아파트가 준공되며 물금지역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양산의 역사와 향토문화를 집대성한 '양산군지'가 발간됐으며, 통일신라 불교문화의 가치를 간직한 미타암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보물로 지정됐다. 37년이 지난 현재 되돌아보면 양산 발전사의 한 장을 이룬 변화들이다.창간 37주년을 맞아 양산신문은 1989년 양산에서 있었던 주요 변화들을 다시 살펴보며, 오늘의 양산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발자취를 간단히 되짚어 본다.■ 물금면사무소, 새 터전 마련하다오늘날 물금읍행정복지센터의 뿌리는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설립된 상서면사무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동향교 명륜당에 자리했던 면사무소는 1921년 7월 화학리(현 물금리) 390-3번지로 이전했다. 이후 1936년 4월 상서면이 물금면으로 개칭되면서 명칭도 물금면사무소로 변경됐다. 당시 물금면 인구는 7241명이었다.약 53년이 지난 1989년 11월 13일 물금면사무소는 황산로 392(물금리 40-3)로 청사를 신축 이전했다. 당시 물금면의 규모는 3536가구, 인구 1만2877명으로 가구당 인구는 3.64명이었다. 다음해부터 물금지역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했다. 1995년에는 7626가구, 2만5497명으로 늘어나 불과 6년 만에 가구 수와 인구가 두 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1996년 양산군의 시 승격에 따라 물금면도 물금읍으로 승격되면서 물금읍사무소로 운영됐다.시간이 흘러 택지개발과 지속적인 인구 유입으로 행정 수요가 크게 확대되면서, 기존 청사만으로는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1989년 신축한 청사가 개발지구에 포함되면서 이전 필요성도 커졌다. 이에 따라 2012년 3월 9일 현재의 부지로 청사를 신축 이전해 현재까지 물금읍행정복지센터로 운영되고 있다.1989년 물금면사무소 이전 및 신축 당시 모습/양산신문DB물금면청사/한국향토문화대전■ 동갑내기 범어주공 1차, 양산 첫 재건축 사례1989년 3월 630가구 규모로 준공된 범어주공1차아파트는 노후화 문제로 2006년부터 재건축 추진에 나섰다. 주민들은 같은 해 재건축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안전진단 예비심사를 진행했지만, 당시 심사 결과가 '유지보수' 판정을 받으면서 사업이 한 차례 보류됐다. 그러나 2011년 6월 정밀안전진단 용역 결과 D등급 판정을 받으며 양산지역 최초의 재건축 사업으로 확정됐다.2014년 7월에는 창립총회를 열어 재건축조합을 설립하고, 2016년 7월 시공사를 선정했다. 다음해 2017년 9월 지하 3층·지상 29층, 6개 동, 총 842세대 규모의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이후 2018년 8월 관리처분계획인가를 거쳐 2019년 4월 착공에 들어갔다.2022년 8월에 임시사용 승인을 받아 입주가 시작됐으며, 2023년 1월 준공되어 현재의 '물금 브라운스톤'이라는 새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이처럼 양산신문과 동갑내기였던 범어주공1차의 재건축 사업은 현재 추진 중인 재건축 사업은 물론, 향후 도시정비사업의 상징적인 사례로 자리매김했다.범어주공1차■ 구 시외버스터미널, 남부시장에 터 잡아1989년 3월 구 양산시외버스터미널이 당시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인근에서 남부시장 인근으로 이전했다. 같은 해 8월 터미널 사업 면허를 취득하여 1991년 해당 부지에 터미널 건립됐다.당시만 하더라도 "양산에서 만나자"라는 말은 곧 구 양산시외버스터미널을 의미할 정도로, 이곳은 양산의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이자 교통 중심지 역할을 했다. 또한 신도시 개발 이전까지 중심 상권 역할도 했었다. 하지만 시설 노후화와 도시 확장으로 이전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2007년 6월 현재의 양산시외버스터미널로 이전했다.터미널이 신도시로 옮겨간 뒤 구 터미널 일대는 급격히 쇠퇴했다. 터미널 부지 소유권이 민간업체로 넘어갔지만, 자금난 등으로 별다른 개발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건물은 수년간 방치됐다. 인근 상인들도 상권 침체를 호소하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2012년 제2청사와 일대에 상가가 들어서며 점차 활기를 되찾게 됐지만, 여전히 과거의 활기를 되찾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잇따른다.구 시외버스터미널■ 양산군지 편찬, 양산시지의 계승책1989년에는 양산의 역사와 향토문화, 생활상 전반을 집대성한 '양산군지'가 편찬·발간됐다. 이 자료집에는 당시 양산군 관할이었던 현재 부산시 기장군 관련 기록은 물론, 일광읍 삼성리의 지명 유래 등 다양한 지역사 자료가 수록돼 있다.양산의 역사를 기록한 군지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현존 자료에 따르면 1786년경 편찬된 '양산군읍지'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증보와 개정을 거쳐 계승돼 왔다. 1899년 편찬된 '양산군읍지'에는 양산의 옛 지명인 '삽량주'와 '양주' 변화 등에 관한 기록도 담겨 있다.1989년 발간된 '양산군지'도 기록을 계승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2004년에는 '양산군지'를 증보·보완한 '양산시지'가 발간됐다. 양산시 승격 이후 15년 만에 새롭게 편찬된 기록물이다. 이후 22년이 지난 현재 양산시는 인구 37만명을 넘어서는 등 도시 규모와 지역 환경이 크게 변화했다. 이에 따라 변화된 양산을 새롭게 담아낼 신편 양산시지 편찬 필요성도 제기돼 왔다.1899년 양산군읍지/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보물 지정 '미타암 석조아미타여래입상''양산 미타암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1989년 4월 국가유산청으로부터 보물 제998호로 지정됐다. 올해 6월 기준 양산지역에 있는 33개의 보물 가운데 하나이자, 웅상지역 국가유산 중 유일한 국가지정 보물이기도 하다.이 불상은 보물 지정 이전부터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2년 경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그 가치가 더욱 부각되면서 보물로 승격됐다.위치는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미타암의 천연 석굴 안에 안치돼 있으며, 전체 높이 205㎝에 불상 높이 149㎝ 규모이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육계를 갖추고 있으며, 어깨까지 내려온 긴 귀와 풍만하면서도 우아한 인상을 하고 있다. 불상은 8세기에 만들어진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과 유사해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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