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연주를 통해 많은 이들의 마음에 치유의 음률을 선사하는 서재수 원장.“언제나 내 인생은 음악과 하나였다”북신시장의 활기차던 북적임이 사라지고, 지는 해와 함께 상인들이 퇴근을 준비하는 어느 목요일의 저녁. 1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장을 지나 한 건물의 지하로 향한다. 어두운 지하를 내려가면 차갑고 육중한 철문이 사람들을 반겨준다.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두운 밖과 달리 밝은 빛으로 가득한 그들의 아지트가 주인들을 맞이한다. 이들은 ‘통영색소폰합주단’으로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모여 합주 연습을 한다. 그들이 모인 이곳은 합주단의 악장인 서재수 원장의 색소폰 아카데미이다.서 원장과 합주단원들은 통영, 거제, 고성 등 경남의 지역의 축제나 행사에서 색소폰 합주 공연을 펼친다. 주로 통영에서 활동하는 서 원장은 장소와 돈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봉사하는 마음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달려가 공연을 한다. 이는 ‘좋은 마음에서 좋은 음악이 나온다’는 그의 철학 때문이다.약 20년간 음악이 필요한 곳으로 달려가 연주를 한 서재수 원장이 음악을 시작한 계기는 지금과 다르게 생계를 위해서였다. 서 원장은 고등학생 시절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냐며 미래를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민에 빠져있는 서 원장에게 그의 친구가 다가와 밤무대(무대가 있는 음식점이나 나이트클럽에서 하는 공연 활동의 총칭)에서 연주를 하는 한 사람을 소개해 준다.밤무대에서 악기를 다루는 어른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던 서 원장은 그의 심부름을 도맡아 해주며 악기 다루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서 원장 또한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밤무대에서 활동하며 생계를 이어 나갔다.그러다 해병대 428기로 입대한 그는 노래, 악기, 춤 등 끼가 다분한 병사들을 차출해 구성된 위문공연단인 문화선전대에서 3년 동안 악기를 다루는 법과 연주 기법 등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제대를 한 뒤에는 마산 MBC의 악단으로 일을 하는 등 서 원장은 음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았다.현재 서 원장은 ‘통영색소폰합주단’을 이끌며 지역의 다양한 축제와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시간이 흘러 2005년, 전국적으로 색소폰 열풍이 불며 서 원장의 음악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호기심에 색소폰을 연주한 서 원장은 색소폰이 주는 중후한 음률에 전율하는 몸과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색소폰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결국 통영 최초로 ‘한려리더스클럽’이라는 색소폰 동호회를 만든다.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음악이 이제는 순수한 마음으로 즐기는 인생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그의 색소폰 사랑과 함께 2006년에 출범한 ‘한려리더스클럽’은 자신들의 연주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그리고 지금은 ‘통영색소폰합주단’으로 지역의 다양한 축제와 행사에서 음악으로 이바지하고 있다.서재수 원장은 “옛 현인인 공자께서는 예악이라는 사회적 질서와 조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사상을 가지고 계셨다. ‘예’는 규범과 형식을, ‘악’은 음악과 조화를 의미한다. 나 또한 공자의 말씀에 공감하며 예악을 따르려고 했다. 예로써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봉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악으로써 진심이 담긴 음악을 통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일으켜 주고 싶다”고 말했다.아울러 “나는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룰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음악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인류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악기는 연주로써 인류를 하나로 묶는 매개체다. 그러니 우리가 미래를 위해 제2의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자신에게 맞는 악기를 다룰 줄 안다면 정말 멋진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며 씨익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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