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축제 포화시대, 지역성을 담은 축제로 변해야 한다⑮남해 독일마을 맥주축제공동취재단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2025 공동주제심층보도지원사업’을 지원받아 한 해 동안 국내 지역축제와 함께 독일·스페인 등 해외 성공 축제를 취재하며, 축제의 규모나 흥행이 아니라 지속되는 축제와 소모되는 축제의 구조적 차이를 살펴봤다. 이번 기사는 공동취재단의 취재를 바탕으로, 지역축제를 행사 차원이 아닌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짚고, 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축제는 1천214개에 달한다. 등록되지 않은 소규모 행사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다. 하지만 늘어난 만큼 축제의 질이 높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같은 소재로 같은 행사, 획일화된 콘텐츠, 바가지요금 논란, 주민 동원식 운영, 외주 업체 의존, 예산 대비 낮은 성과는 매년 되풀이되는 고질적 문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단순한 ‘관리 부족’이 아니라 축제 운영 구조 자체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별 축제를 조금씩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축제 운영 시스템 전체를 재설계하는 정책 전환이다.제18회 정남진 장흥물축제왜 여기서 열려야 하는가대부분의 지역축제를 보면 이름과 특산물만 다를 뿐 프로그램 구성은 비슷하다. 농산물 판매 부스, 연예인 초청 공연, 시식 체험이 전부인 축제가 적지 않다. 이런 축제는 어느 지역에서 열려도 상관없다. 지역 고유의 역사·문화·산업을 기반으로 한 차별적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다.이에 공동취재단은 지역 역사·산업·공동체 자원을 아우르는 ‘지역 정체성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제안한다. 축제 기획 단계부터 지역 고유의 서사를 핵심 구성 요소로 반영하고, 상징물·브랜드·프로그램이 지역 자원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의미다.제64회 통영한산대첩축제관객에서 생산자로많은 지역축제에서 주민은 ‘참여 대상’이거나 ‘동원 대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해외 성공 축제의 현장은 다르다. 스페인 타라고나의 산타 테클라를 비롯해 바르셀로나의 라 메르세 축제에서 시민들은 1년 내내 주말마다 모여 인간탑(카스텔) 연습을 한다. 독일 뉘른베르크 구시가지 축제에서는 상인·예술가·주민이 직접 축제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콘텐츠를 기획한다. 이들에게 축제는 외부에서 주입된 이벤트가 아니라 삶의 일부다. 이에 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축제가 아니라면 지역성을 담은 축제는 담보할 수가 없다.제13회 대구치맥페스티벌무엇을 경험하러 오는가공동취재단이 2025년 한 해 동안 국내 지역축제를 취재하며 확인한 공통점은 분명했다. 성공 가능성을 가진 축제는 반드시 하나의 ‘핵심 체험’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 반대로 공연 일정과 부스만 나열된 축제는 방문객의 체류 시간과 기억 모두에서 한계를 드러냈다.한산모시문화제는 ‘전통 섬유 축제’라는 이름보다, 모시를 만드는 전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축제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공동취재단이 현장에서 확인한 핵심은 전시나 공연이 아니라, 모시풀 재배부터 태모시 짜기까지 이어지는 손작업 과정이었다. 관람객은 결과물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손으로 만지고 시간을 들여야 완성되는 노동의 과정을 체험한다. 이 경험은 기계화된 현대 산업과 대비되며, 한산이라는 지역의 역사와 삶을 몸으로 이해하게 만든다.대구치맥축제의 경쟁력 역시 공연보다 도심에서 치킨과 맥주를 함께 소비하는 집단적 경험에 있다. 방문객들은 특정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이기도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치킨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밤을 보내기 위해 축제장을 찾는다. 무더운 여름, 가장 덥다고 알려진 대구에서 치맥이라는 단순한 조합이 ‘대구의 여름 밤’이라는 장면으로 확장되면서 축제는 명확한 기억을 남긴다.장흥물축제는 ‘물놀이 축제’라는 범주를 넘어, 탐진강이라는 구체적 장소에서 물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공동취재단이 취재한 현장에서 축제의 중심은 공연 무대가 아니라 강이었다. 수질 1등급 탐진강에서 물놀이와 체험 프로그램은 장흥이라는 지역의 자연환경이 곧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방문객은 무언가를 보기보다 강에 들어가고, 젖고, 놀면서 축제를 완성한다.통영한산대첩축제는 역사 재현형 축제 가운데서도 ‘전투를 본다’가 아니라 ‘전투의 서사 속으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공동취재단은 해상 퍼레이드와 재현 프로그램이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한산도 대첩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공간과 결합해 체험하도록 설계돼 있음을 확인했다. 바다와 항구, 배라는 실제 공간이 결합되면서, 관람객은 교과서 속 사건이 아니라 현장의 긴장감을 간접적으로 체감하게 된다.남해 독일마을 맥주축제는 해외 축제의 단순 모방을 넘어, 독일마을이라는 장소에서 ‘독일식 일상을 경험하는 축제’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공동취재단이 현장에서 확인한 축제의 핵심은 맥주 판매가 아니라, 독일 전통 음악·의상·음식이 어우러진 공간 경험이었다. 방문객은 짧은 시간이나마 ‘독일 마을에 머문다’는 감각을 체험하며, 이는 다른 지역에서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요소다.이들 축제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축제를 대표하는 핵심 체험이 분명하고, 그 체험은 특정 장소와 분리될 수 없다. 또한, 공연과 이벤트는 핵심 체험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문다는 점이다.스페인 산타 테클라 축제축제의 기본을 국가 기준으로지역축제의 안전 기준은 여전히 미흡하다. 인파 밀집 지역 관리, 비상 동선 확보, 의료진 배치 등 기본적인 안전 체계조차 마련되지 않은 축제가 적지 않다. 독일 옥토버페스트는 텐트 내 인원 제한, 비상구 확보, 의료진 상주 등 안전 기준이 법에 준하는 수준으로 엄격하다.지자체를 포함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역축제 안전 매뉴얼 국가 표준'을 제정해야 한다. 교통 분산 계획을 의무화하고, 장애인·고령자 접근성 기준을 축제 인허가 요건으로 반영해야 한다.지역경제 선순환 구조 확립축제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외주 업체 중심 구조 때문이다. 기획·진행·무대·음향·조명을 외부 업체에 맡기면 예산의 상당 부분이 지역 밖으로 빠져나간다.따라서 축제 용역의 지역 업체 비율 확대를 위한 제도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각 지자체의 조례를 통해 축제 식재료의 일정 비율을 지역 농수산물로 조달하고, 부스 운영권도 지역 상인에게 배정하도록 규정할 수 있다.상설 조직 구축축제가 1년에 며칠만 열리고 나머지 기간에는 아무것도 없다면 지역 문화는 성장하지 않는다. 또한 많은 지자체가 축제를 일시적인 조직으로 운영한다. 담당 공무원은 2~3년마다 교체되고, 외주 업체에 의존하면서 축제 노하우가 지역에 축적되지 않는다. 반면 독일 옥토버페스트는 뮌헨 시청 내 축제 전담 부서가 연중 운영을 책임진다. 지자체는 축제 전담조직을 설립하고 전문 인력을 채용해야 한다. 3~5년 단위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하고, 정치적 변화와 무관하게 축제가 지속되도록 조례 등 법적 안전장치를 확보해야 한다.공동취재단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2025 공동주제심층보도지원사업’을 지원받아 한 해 동안 국내 지역축제와 함께 독일·스페인 등 해외 성공 축제를 취재하며, 축제의 규모나 흥행이 아니라 지속되는 축제와 소모되는 축제의 구조적 차이를 살펴봤다.환경·사회적 지속가능성기후 위기와 사회적 다양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지속가능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기준이다. 매년 올라가는 기온에 특산물 축제들은 출하 일정과 어긋나고 있고, 스콜성 폭우, 태풍, 무더위 등으로 인해 축제 일정은 예전처럼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변화하는 기후를 이용할 수 있지 않으면 일정을 과감하게 변경하는 방법도 진지하게 추진해야 한다.다회용기 사용, 폐기물 최소화, 탄소 배출 관리를 의무화하고, 장애인·고령자·아동 등 다양한 시민의 참여권을 보장하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축제 환경·안전·포용성 평가를 제도화하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축제는 지원을 중단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구조적 전환 없이는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다지금 한국 지역축제는 근본적 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 더 많은 축제를 개최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축제를 설계하는 것이 지역의 미래를 결정한다. 전국이 축제 포화 시대를 맞이한 지금, 지역은 선택해야 한다. 해마다 비슷한 이벤트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문화유산을 설계할 것인가. 그 선택은 정책 결정자와 지역 주민의 손에 달려 있다. 공동취재단 - 한산신문 박초여름 기자, 홍주신문 한기원 기자, 남해시대 전병권 기자, 담양곡성타임스 김고은 기자, 해남신문 노영수 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