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산신문 창간 36주년 특별기획-통영에서 꿈을 이루는 청년들 75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을 내려놓고 조리사의 길을 택한 청년이 있다.올해로 서른넷이 된 최훈식씨는 한때 경남 진주에서 교육 공무원으로 민원 업무 담당을 거쳐 교육 정책 수립, 기획·예산 수립 등 행정 전반을 담당했다. 비교적 안정적인 길이었지만, 그는 결국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현재 그는 통영 스탠포드호텔 레스토랑 조리팀에서 조리사로 근무하며 바쁜 주방 한가운데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공무원 생활은 사회초년생이었던 그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다. 다양한 민원인들을 상대하며 수많은 변수에 대응해야 했고, 매 순간 정확한 판단과 차분함이 필요했다.그는 직장동료들과 발을 맞추는 방법을 배워야 했고, 정답이 없는 상황 속에서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 했다. 비록 업무 처리 과정이 길어질지라도 결국 해결방안을 마련해 민원인들을 도왔을 때, 고맙다는 말을 들으며 비로소 일의 보람을 느꼈다. 그 경험은 지금도 그의 일에 대한 기반이 되고 있다.이직을 고민하게 된 배경에는 성격적인 요인이 컸다. 대학생 시절부터 서비스직에 관심이 많았고, 몸을 움직이며 사람을 직접 마주하는 일을 선호했다. 하지만 행정 업무의 특성상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사무업무에서 답답함을 느낀 그는 “체력이 받쳐줄 수 있는 나이에 이직을 하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해보고 싶은 걸 해보자”고 결론을 내렸다.이직을 결심한 시점이 명확히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체력과 열정이 허락하는 시기에, 후회 없이 새로운 길을 선택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그를 움직였다.안정적인 직업을 내려놓는 결정에는 당연히 주변의 걱정도 뒤따랐다. 공무원을 권유한 부모님은 염려를 보냈고, 친구들 역시 걱정과 응원을 함께 건넸다. 하지만 이직 후 그의 표정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친구들은 “얼굴이 폈다”는 말을 장난스레 자주 건넸고, 그는 스스로도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느꼈다.그가 조리사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요리를 좋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는 과거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오랜 기간 홀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비스 현장의 매력을 몸소 경험했다. 고객을 직접 응대하며 쌓은 경험으로 다시 서비스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에 도전했다.새로운 길 앞에서 가장 컸던 두려움은 안정적인 직업의 상실보다 전문성에 대한 부담이었다.기술과 숙련도가 요구되는 분야인 요리를 고민하던 순간, 그는 우연히 야구 중계를 통해 들은 캐스터의 멘트로 오래도록 고민하던 마음의 결단을 내렸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만 기대감은 발걸음을 재촉합니다”라는 말은 그가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두려움은 있었지만, 해보자”는 확신이 생겼다고 회상했다.현재 그는 스탠포드호텔 조리팀 소속으로 단체 행사가 있을 때는 콜 파트(냉장·냉동 상태의 재료를 다루는 파트)를 담당하며, 레스토랑 단품 메뉴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조리사로서의 일상은 그가 상상했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레시피만 익히면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 주방은 철저한 협업의 공간이었다. 그는 주방에서 팀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직접 배웠다.하루 중 가장 치열한 순간은 디너 서비스 직전이다. 주문이 몰리기 전까지의 재료 준비 시간, 예상치 못한 요청, 실수가 발생했을 때의 즉각적인 대처까지 모두 긴장 상태다. 그럼에도 “톱니바퀴가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는 느낌처럼 각자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말 한마디 없이도 척척 손발이 맞을 때, 그렇게 함께 만들어낸 요리가 깨끗하게 비워져 돌아올 때 나도 모르게 웃고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불과 칼이 오가는 공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차분한 태도다. 민원인을 응대하는 업무를 통해 쌓아온 차분함과 순간적인 상황 판단력은 조리사로서의 일상에 큰 강점이 됐다.공무원과 조리사, 두 직업을 모두 경험한 그는 ‘일’에 대한 생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어떤 일이든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노동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걸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일을 맡은 순간의 자세다. 그는 “일의 종류보다 그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책임감이 더 중요하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그의 목표는 아직 현재진행 중이다. 당장은 기술을 쌓고 경험을 넓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호텔 내 다양한 파트를 경험하며 경영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언젠가 자신의 가게를 차려 직접 손님을 맞이해보고 싶다는 꿈도 함께 품고 있다.최훈식씨는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그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작게라도 직접 경험해보며 내가 이 길을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안정과 도전 사이에서 망설이는 이들에게 조언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