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7주년을 맞아 통영의 만세운동 재조명과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행사가 1일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개최됐다.1919년 3월, 독립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했던 선조들의 피 끓는 함성이 107년이 흐른 2026년 통영시 강구안 일원에서 울려 퍼졌다.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7주년을 맞아 통영의 만세운동 재조명과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행사가 1일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개최됐다.통영의 만세운동은 지식인은 물론 장꾼과 학생, 여성과 기생 등이 합심해 4차에 걸친 3천700여 명이 참여, 뜨거운 만세운동으로 한국사에 기록되고 있다.특히 목숨 건 통영 만세운동의 출발은 1919년 3월 8일 경성 배재고에 재학 중인 진평헌이 귀향, 3월 13일 장날을 기해 양재원 권남선 등 19명의 청년이 송정택 사랑방에서 거사를 결의하면서 시작됐다.통영의 시위는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총 4회 3천700여 명의 지식인, 청년 학생들이 주축이 돼 차츰 각계각층 시민들이 참여했다.대부분 장날을 이용, 통영 읍민과 인근 농어민들까지 동참, 시위 규모가 확대돼 당시 통영시민들의 독립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 더욱이 4월 2일 시위에는 예기조합의 기생 33명도 금비녀와 팔찌를 팔아 소복차림으로 시위대열에 동참했다는 감동적인 기록도 있다.현재 원문공원에 자리하고 있는 3.1운동 기념비는 통영인으로서 3.1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르고 희생을 당한 애국지사들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1972년 9월 충무 시민의 이름으로 남망산 광장에 세웠다가 1991년 원문공원으로 이설,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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