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을 맞아 1919년 양산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지역 만세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 엄주태 선생이 '3월의 우리고장 보훈인물'로 선정됐다.국가보훈부 울산보훈지청은 2026년 3월 이달의 우리고장 보훈인물로 양산 3·1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유공자 엄주태 선생을 선정했다고 3일 밝혔다.1900년 10월 18일 경상남도 양산군 양산면 중부동에서 태어난 엄주태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양산지역 만세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당시 양산에서는 세 차례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통도사 승려와 학생들이 중심이 돼 신평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양산읍 장터에서도 두 차례 만세 시위가 이어졌다. 이 가운데 양산읍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당시 스무 살 청년이었던 엄주태 선생이다.선생은 1919년 3월 부산진 일신여학교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산 일대를 돌며 상황을 확인한 뒤, 같은 달 13일 동래장터 만세운동에도 직접 참여했다. 이후 학생들이 배포한 독립선언서와 공약서, 경고문 등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와 양산에서의 거사를 준비했다.선생은 전병건 등 지역 청년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경고문 등을 등사해 배포하기로 협의하고 200여매를 제작하는 등 만세운동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이어 3월 27일 양산장날을 맞아 장터 한복판에서 독립선언서를 나눠주며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했고, 장터에 모인 군중이 호응하면서 시위는 순식간에 수천명이 참여한 대규모 만세운동으로 확산됐다.이날 시위 과정에서 선생을 비롯한 청년들이 일본 헌병경찰에 체포됐다가 군중의 항의로 한 차례 석방됐지만, 이튿날 새벽 다시 체포돼 부산감옥에 수감됐다.엄주태 선생은 같은 해 4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으며, 대구복심법원에 항소했으나 기각돼 약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에도 옥고의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다 1928년 28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울산보훈지청은 "앞으로도 '이달의 우리고장 보훈인물' 선정을 통해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보훈의 가치를 지역사회에 확산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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