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느티나무 같았던 박성필 회장님, 회장님은 가셨지만 회장님이 심은 벚나무는 해마다 봄이 오면 화려하게 피어날 것입니다. 회장님이 닦아놓으신 그 길을 따라 우리 후배들은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품고 걸어갈 것입니다. 회장님이 일궈놓은 이 땅의 결실과 우리 가슴 속에 심어진 고향 사랑 정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회장님을 모실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무거운 짐 내려놓으시고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잠드소서.” (유성기 재경함양군향우회 경로대학장) 일평생 고향 사랑을 실천해 서상면 주민들과 향우들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어온 원로 박성필 서상면향우회 명예회장이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3월 14일 눈을 감기 직전까지, 위중한 상태에서도 구급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와 20년 전 직접 조성한 서상면십리벚꽃길을 위해 기금 1000만 원을 기부했을 정도로 온 생에 고향 생각뿐인 사람이었다. 향우들과 지역주민들은 박 회장의 생을 돌아보며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했다. 서상면향우회가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향우회장으로 장례를 치른 가운데, 박성필 회장의 영결식이 3월 17일 열렸다. 지난해 향우들과 지역주민들이 박 회장의 공덕을 기리고자 서상중·고등학교 앞에 세운 송덕비 앞에서 그는 산 자들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첫 월급부터 생의 마지막까지 고향 사랑”1931년 4월 7일 서상면 옥산마을에서 태어난 故 박성필 회장은 서상초등학교(18회)와 안의중학교(1회)를 졸업한 뒤 진주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조달청에 입사해 공직에 몸담아 서기관으로 퇴임했다. 이후 코오롱그룹의 동아레저 대표 역임한 뒤 창인상사를 설립해 운영했으며, 옥산무역 회장을 맡는 등 기업인으로 활동했다. 살아온 과정에서 함양군 출신 향우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오랜 시간 침체됐던 재경함양군향우회를 1987년 재건해 10만 향우회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한때 와해됐던 서상초등학교 총동창회를 재창립하고, 안의중학교 동창회도 창립했으며, 함양축구동호회 설립 등 여러 단체를 조직해 향우들의 결집과 고향 발전에 기여했다. 특히 서상면 향우들과 뜻을 모아 십리벚꽃길 조성을 주도했다. 벚꽃길 활성화를 위해 벚꽃축제가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1000만 원씩 기탁했으며, 서상초·중·고와 안의중학교에 장학금과 교육발전기금도 1000만 원씩 기부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이밖에 총동창회 등 지역사회를 위해 기부와 나눔의 뜻을 곳곳에서 펼쳐왔다. 고인의 약력을 소개한 강정구 장례위원장은 “첫 월급을 받았을 때부터 생의 마지막까지 고향과 후배를 위해 숭고한 뜻을 이어오셨다”며 “그의 업적은 우리들의 가슴 깊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성필 회장님은 ‘서상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할아버지·아버지에 이어 박 회장님까지 지역에 송덕비가 건립돼 있을 만큼 가족이 대를 이어 고향 사랑을 실천해왔다”고 덧붙였다. “고향 위해선 궂은 일 마다치 않아”조사를 전한 유성기 재경함양군향우회 경로대학장은 “박성필 회장님은 우리 고향의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후배들에게는 삶의 이정표가 되어주셨다”면서 “회장님이 없는 이 자리가 이토록 시리고 허전한 것은 그가 남긴 따뜻한 온기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향 발전을 위해서라면 궂은일도 마다치 않으셨고, 한결같이 고향을 위해 헌신한 진정한 거목이셨다”며 “지난해 초등학교 입학생이 없어 크게 걱정하셨는데, 올해 중학교에 6명이 입학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셨다. 기어이 장학금을 보내야겠다며 주삿바늘을 꽂고 고향으로 달려가셨다. 그 모습은 마치 죽음을 목전에 둔 성자 같았다”고 회고했다. 정영선 전 서상초등학교 교장은 추도사를 통해 “당신의 안위보다 고향의 미래를 먼저 걱정하셨고, 그 걱정은 고스란히 후배들을 향한 장학금으로 이어졌다”면서 “회장님의 손길로부터 시작된 서상에서 장계로 이어지는 벚나무길에는 생전의 깊은 뜻을 담아 동서를 잇는 꽃들이 해마다 번져 나올 것”이라고 울먹였다. 그는 “무릇 서상인이라면 서로의 흉허물을 탓하지 말고 좋은 점을 찾아내어 발전시키라 말씀하시며 대인의 가슴으로 모두를 넉넉하게 품어주시던 인자하시고 강직하셨던 그 모습을 이제 더는 볼 수 없음이 못내 아쉽고 서운하기만 하다”면서 “박성필 회장님께서 남기신 나눔과 봉사의 숭고한 정신이 화림동계곡의 맑은 물줄기처럼 영원히 흘러 우리 서상과 후손들의 앞뒤를 환히 밝히는 커다란 등불이 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고인의 장남 박해국 씨는 “아버지는 일평생 고향을 생각하던 분이셨다”며 “아버지와 함께 고향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많은 분들이 아버지가 떠나는 마지막 길에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