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겠다. 이번 국민의힘 산청·함양·거창·합천 공천 파동의 본질은 공천실패가 아니다. 책임정치의 실패다. 지역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이 공천의 가장 뜨거운 순간에 원칙의 방패가 되지 못하고, 책임의 한복판에서 뒤로 물러선 사건이다.국민의힘 신성범 의원의 지역구인 산청·함양·거창·합천 선거구 네 개 군이 동시에 흔들렸다. 거창은 경선 배제와 재경선 논란으로 중앙당 항의까지 번졌고, 함양은 경선 없는 단수공천으로 공정성 논란이 커졌다. 합천은 현직 군수의 탈당·무소속 출마 선언으로 보수 진영이 갈라졌으며, 산청에서도 경선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형사고소로 공천이 법정으로 갔다.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혼란이 과연 우연인가. 신성범 의원은 정치 복귀 과정에서 “8년간의 성찰을 통해 몸과 마음이 단단해졌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섰던 경험이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었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이었다면 이번 공천은 달라야 했다. 공정해야 했고, 설명이 있어야 했고, 책임이 뒤따라야 했다. 그러나 지역이 본 것은 불공정함과 침묵이었다.거창, 공천의 칼날은 왜 사람을 베었나거창군수 공천은 이번 파문의 가장 거친 진앙이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이 제기되자 국민의힘 경남도당은 기존 4자 경선을 무효화하고 일부 후보를 제외한 재경선을 추진했다. 이후 경선에서 배제된 이홍기·최기봉 예비후보 측은 강하게 반발했고, 이홍기 예비후보는 중앙당사까지 찾아 재심사를 요구했다. 더 뼈아픈 것은 신성범 의원 스스로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거창군수 경선 과정에서 책임당원 명부 유출 의혹이 제기되자, 신 의원 측은 “당협위원장으로서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했다. 사과했다면 끝인가. 아니다. 사과는 책임의 시작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당원 명부는 정당의 심장이다. 그 심장이 흔들렸다면, 누가 언제 어떻게 흔들었는지 밝혀야 한다. 그런데 지역민들이 체감한 것은 명쾌한 해명보다 혼란이었다. 경선은 무효가 됐고, 후보는 배제됐고, 재경선은 추진됐고, 법원 판단까지 기다리는 상황이 됐다. 이것이 과연 책임 있는 공천인가.정치는 칼을 쥐는 일이 아니다.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그런데 거창에서 기준은 보이지 않고 칼날만 보였다. 누구에게는 베이는 칼이었고, 누구에게는 길을 열어주는 칼이었다는 의심이 남는다면, 그 공천은 이미 실패한 것이다.함양, 경선 없는 단수공천이 남긴 질문함양은 더 조용해 보였지만, 상처는 깊다. 국민의힘 경남도당은 진병영 현 군수를 함양군수 후보로 단수공천했다. 하지만 함양군수 공천에는 진병영 현 군수뿐 아니라 김한곤·이영철 예비후보도 신청했지만, 최종적으로 진 군수가 단수공천됐다.문제는 단수공천 그 자체만이 아니다. 왜 경선조차 없었느냐는 질문이다. 정치 신인에게 기회를 준다던 당의 말은 어디로 갔는가. 경선이라는 최소한의 절차를 통해 군민과 당원에게 물어볼 수는 없었는가. 경쟁자에게 “당신은 부족하다”고 말하려면, 적어도 왜 부족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당이 결정했으니 따르라”는 식의 침묵은 공천이 아니라 통보다.공천 결과 이후 반발도 이어졌다. 김한곤 예비후보가 “불공정과 구태정치에 무너진 결과”라며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군민들로부터 직접 심판을 받아볼 기회조차 원천 봉쇄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한 사람의 분노만이 아니다. 경선을 통해 평가받고 싶었던 후보들의 좌절이고, 선택권을 갖고 싶었던 군민들의 허탈함이다.함양의 공천은 묻는다. 정치 신인은 언제 기회를 얻는가. 현직의 벽 앞에서, 지역 권력의 벽 앞에서, 당내 질서의 벽 앞에서 신인은 늘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가. 신인이 경선장에 서보지도 못한다면, 당이 말하는 쇄신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카르텔과 기득권에 무너진 그 억울함은 어디에서 보상받아야 하는가.합천, 탈당으로 번진 공천 불신합천은 공천 갈등이 탈당으로 폭발했다. 김윤철 합천군수가 국민의힘 경선 방식에 반발하며 탈당 후 무소속 출마했다. 김 군수는 경남도당이 결정한 경선 후보군에 “중앙당 매뉴얼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이 있다”고 주장했고, 현직 단체장을 본선에 바로 올리지 않고 경선을 치르게 하는 것도 형평성을 잃은 처사라고 밝혔다. 합천의 문제는 단순히 김윤철 군수 개인의 불복으로만 볼 수 없다. 합천에서도 당원 명부 유출 의혹, 경선 방식을 둘러싼 불신, 외부 개입설까지 거론됐다. 물론 이러한 의혹은 수사와 당 조사로 확인돼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정치는 법적 결론 이전에 신뢰로 움직인다. 군민들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순간, 공천은 이미 정치적 정당성을 잃기 시작한다.여기에 합천에서는 도의원 공천을 둘러싼 논란도 제기됐다. 공직에서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물이 공천을 받은 것을 두고, 지역사회에서는 당 기여도와 공천 기준을 둘러싼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이 부분은 구체적 사실관계가 더 확인돼야 하지만, 적어도 지역민들이 느끼는 감정은 분명하다. 오래 당을 지키고, 선거 때마다 몸으로 뛰었던 사람들은 무엇이었느냐는 것이다.정당은 헌신을 기억해야 한다. 당이 어려울 때 곁에 있었던 사람, 낙선의 겨울을 함께 견딘 사람, 지역에서 욕을 먹으면서도 당 깃발을 지켰던 사람을 너무 쉽게 잊으면 안 된다. 공천장이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의 손에 쥐어진다면, 남는 것은 승리가 아니라 배신감이다.산청, 법정으로 간 경선 불신산청도 조용하지 않다. 이승화 산청군수 예비후보는 국민의힘 경선 결과에 반발해 법원에 후보자 결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접수했고, 경선 과정의 불법행위에 대한 형사고소에 나섰다. 후보 측은 당내경선 자유 방해, 허위사실 공표, 선거인단 명부 유출, 대리투표와 여론조작 의혹 등을 주장했다. 이 역시 사실 여부는 수사와 법원 판단을 통해 가려져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산청마저 공천 결과를 정치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법정으로 향했다는 사실이다. 거창, 함양, 합천에 이어 산청까지 흔들린다면, 이것을 개별 후보들의 불만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는가.한 지역구 네 개 군에서 동시에 공천 잡음이 터졌다. 한쪽에서는 경선 배제, 한쪽에서는 단수공천, 한쪽에서는 탈당, 한쪽에서는 가처분과 고소. 이쯤 되면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누가 이 혼란에 책임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