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5월은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까지 온 가정과 사회를 어루만져 주는 감사와 기쁨이 가득차는 달이다. 누군가는 어버이로 자식의 사랑을, 또 누구는 스승으로 제자에게 은혜를, 또는 부부가 서로에게 감사를 나누는 정겨운 달이기도 하다. 이에 본지 기자는 양산의 효자와 스승, 그리고 부부를 찾아서 이들의 삶을 잠깐 엿보기로 했다.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이런 스승 없습니다'에는 올해 첫 개교한 사송고에 부임해 교가를 직접 작사작곡한 황선영 교감이 주인공이다. 말괄량이 삐삐가 연상되는 황 교감은 학생들과의 소통의 도구로 타로를 배웠다고 한다. 고교학점제 척척 박사에 이어 사송고 교가로 음악계로 첫 데뷔를 하고 이제는 타로 맛집으로 입소문 날 황 교감이 너무 궁금해졌다.①이런 효자 없습니다▶②이런 스승 없습니다③이런 부부 없습니다황선영 교감.황.금시절 기적의 교육선.명하게 기록될 교가영.원히 기억될 교육자 사송고 교가(부제: Dream Big! Dream High!)노란 산수유 솔푸른 교정빛나는 햇살 우릴 비추고포근한 바람 불어오는We met in Sasong Go!Sasong Sasong High School!우리 함께 꿈꿔 우리 함께 이뤄Go go Sasong go! 고고고고!내일의 나를 위해 오늘에 도전해손을 맞잡고 한 걸음 더 높이Go go Sasong go! 고고고고!우리 함께 꿈꿔 우리 함께 이뤄꿈을 향해 멈추지 않는 도전Go go Sasong go! 고고고고!Dream Big! Dream High!We make Sasong-go Great!"Go go Sasong go! 고고고고"■ 신설학교에서 교가로 음악계 첫 데뷔를 했는데 소감이 어떤지요. 그리고 교가를 만들게 된 배경과 완성까지 스토리가 궁금합니다.양산을 오며가며 사송고등학교가 지어지는 걸 언뜻 언뜻 보기는 했습니다. 저 학교에 내가 교감으로 갈거라고는 생각 못했고요. 그래도 가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한번쯤은 생각했어요. 양산은 제가 처음으로 교편을 잡은 곳이예요. 제 자녀들도 양산에서 다 초중고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저의 제2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양산 교육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기도 하고 학생, 학부모 성향도 그렇고요. 양산에 인구가 많이 유입되었기는 하나 양산은 역동성 그러면서도 그 하저에 담긴 끈끈한 의리가 매력적인 곳입니다. 됐나? 됐다! 이런거요. 그런 학생들의 매력에 빠져 저의 교사 생활 중에 절반 이상이 양산이예요. 개인적으로 고향으로 돌아오는 걸 선호하지는 않는데 이렇게 양산 사송고에 돌아와 첫 교감을 시작하게 되었네요.요즘은 AI의 도움으로 누구나 작곡가가 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고요. 교육청에서도 다양한 앱활용 및 에듀테크 교육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장학사 생활을 하느라 직접 구동할 시간을 갖지 못했어서 이번 기회에 한번 해보자 마음을 먹었죠.사실 교가는 학교의 상징물 중의 하나이기도 해서 제가 만든 노래가 '교가'의 지위를 얻는 것은 언감생심이었죠. 학생들이 하나될 수 있는 응원가 정도로 생각했거든요. 어쨌든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이 수용(?) 해주어서 고마울 따름입니다.결정적으로는 BTS공연이 제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영감이라고 하니 꽤 거창하게 들릴것 같네요. 그저 글로벌 아이돌의 컴백 공연을 실황으로 보면서 몸도 좀 흔들고 그러다보니 가사가 영어가 많구나 했어요. 영화 시스터 액트에서 보면 주인공 돌로리스가 교회에서 성가를 장엄하게 부르지 않고 하얀 색 가운 같은 걸 입고 몸을 이쪽저쪽 박수를 쳐가며 'I will follow him'을 부른 장면이 나와요. 또 막장 일진들을 흥겨운 노래로 교화하는 데 이때 'Oh, Happy day'를 불러요. 저에게 교사로서의 역할에 대한 인사이트를 준 영화이기도 합니다. 근데 교가를 틀어보니 이 점에서 성공한 것 같긴해요. 한 두소절 쯤에는 어깨가 저절로 들썩이긴 하더라고요.■ 작사작곡이 쉬운 일이 아닌데, 교가로 음악계에 첫 데뷔를 했는데, 혹여 또 제2의 곡을 준비하고 있는지요.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만들면서 알았네요. 하하.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가사를 담아 1차 샘플을 받고 그 중에서 가장 적절한 걸 고르는 작업을 한 수십차례 했죠. 그렇게 해서 고른 한 두 가지 샘플을 찾아내고요. 이 음을 근거로 해서 다시 확장판으로 여러 샘플을 만들어 줍니다. 그럼 듣고 또 듣고 하면서 가사를 곡의 느낌에 맡게 수정하고 라임을 만들고 하는 작업을 했죠.아 그냥 피아노만 할 줄 알면 제가 직접 만들고 싶더라니까요.(어릴 때 피아노학원 안보내준 부모님 원망을 조금 했습니다. 하하) 이렇게 듣고 또 듣고 수정하고 고르고 하면서 완성했어요. 이만하면 저에게 저작권을 줘도 되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제2의 곡이요? 100% 사절입니다.■ 고교학점제를 담당했던 척척박사로 알고 있습니다. 고교학점제가 학생들에게 어떤 큰 변화가 있는지 장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부탁드립니다.척척박사라기는 좀 부끄럽고요. 의령교육청에서 근무할 때 밀양, 창녕, 함안, 의령 4지역의 고교학점제 운영 거점지원청 장학사로 일을 했습니다.학부모대상 설명회, 학생 대상 과목선택캠프 운영, 중학교 교원 대상 고교학점제 연수, 학교 대상 컨설팅이 주업무였어요. 고교학점제는 우리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와 맞물려있습니다.언젠가 이 말도 안되는 정책을 접겠지 하는 누구나의 기대가 절대 일어나지 않은 건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개인의 선택과 취향이 중요해지는 사회에서 학교가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죠. 획일적인 보충수업에 대한 불만, 내가 원하지도 않는 수업을 왜 들어야하는 거냐고 학생들은 뾰료퉁했었거든요. 그 훨씬 전에도 말이죠. 이제 마음껏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니 한발 멈칫하는 느낌입니다.맛있게 차려놓은 밥상에서 어떤 걸 먹어볼거야 라는 질문에 뭘 먹어야 하는 거지 하고요. "다른 눈치 보지 말고 정말 먹고 싶은 걸 먹어"라고 교육부는 말하고 있는데 학생과 학부모는 정작 그럴 수 없는 상황인거죠. 대학입시가 있는데 어떻게 과목을 내맘대로 듣는다는 건가! 거기에 또 대학가이드라인까지 주어져 있는 상황이네요.학생의 수준은 학교의 수준을 넘을 수 없습니다.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는 학교가 설계한 교육과정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믿고 학교를 믿어준다면 그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 선생님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으로 여러분에게 행복한 밥상을 차려드릴 겁니다. 믿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신설학교에 고교학점제와 함께 출발하는 사송고 교감으로 온 것은 학생들은 행운이고 학부모는 행복인 것 같습니다. 특별한 꿀팁을 양산학생들과 공유해 줄게 있다면.사송고에서 교감을 시작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라고 하면 거짓말일 겁니다. 신설학교에는 교감으로서 챙겨야 할 것들이 태산이니까요. 그렇지만 사송고를 선택하고 입학해준 학생과 학부모의 기대를 알고 있습니다.겸손이 미덕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저는 고등학교 입시와 학업에 대한 전문성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학생들과 엎치락뒤치락하며 진학에 노하우를 쌓아 왔고요. 또 장학사를 하면서 웬만한 학사 업무를 경험했습니다. 그 이엉을 가지고 사송고라는 집의 지붕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양산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응원의 메시지로 바꾸어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여러분들의 선배님들은 저력이 있었습니다. 인성도 훌륭했고요. 유수의 수도권 대학에서 동문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양산지역 모든 고등학교에 계신 선생님들은 실력이 있으신 분들입니다. 학교를 믿고 선생님을 따라주기만 한다면 입시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겁니다. 쓰앵님을 믿어주세요! 특히나 요즘 시대에는 더욱 더 말입니다.■ 황 교감 선생님이 교사가 되기 전까지 궁금합니다.74년생입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대학까지 마쳤습니다. 사범대학의 일반사회교육과를 전공했고요. 지금처럼 진로교육이 활발하지 못한 시절이라 고3교실에 전달되었던 대학 학과소개 책자로만 오롯이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저는 1남 5녀 중 셋째예요. 동생들이 많아서 어릴 때부터 학교놀이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교사의 몸새가 제법 익혀졌던 것 같습니다. 일반사회교육과는 정치학, 경제학, 법학, 사회학, 문화인류학을 기본으로 배우고 그 위에 교육학을 얹습니다. 다양하게 학문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4년 동안 대학 도서관에서 학과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노는 방법을 몰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선생님이 되었으니 첫 교직 입직은 그냥 나 태어난 대로 했던거죠. 출석부를 들어 가슴에 안고 골마루를 지나 교실에 들어서던 그 때가 어떻게 그렇게 떨리던지요. '학생들은 말을 잘 들을까?', '어제 외웠던 판서의 내용을 까먹으면 안될텐데', '내 소개는 또 어떻게 하지? 첫 수업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였으나 마음은 콩당거리다 못해 쿵쾅대었습니다. 교실문을 열었을 때 일제히 나를 보던 35개의 시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 10년 차 교사는 된 듯 태연하게 수업을 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을 최근에 만났는데 제가 너무 신규샘 티가 났다고 하더라고요. 저만 몰랐던거죠. 하하.■ 교단에 첫 발을 딛은 날부터 걸어온 길이 궁금합니다.저는 무척 엄한 선생님이었습니다. 정오도 분명하고, 매너도 중시여기고, 혼낼 때는 아주 혼이 쏙 빠지게 혼을 내었으니 말입니다. 대신 수업 하나는 재미있게 했습니다.수업이 무너지면 어느 것 하나도 아이들이 인정해주지는 않았을테니까요. 학생들의 평가는 아주 정확하고 매정하거든요. 굳이 교원평가를 하지 않아도 선생님들은 늘 수업시간에 매운 평가를 받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이들도 저도 재미있게 수업을 했던 어떤 학기에 저를 '키팅'선생님이라고 치켜 세워준 학생도 있었어요.입학사정관제도로 시작된 학생부종합전형이 입시의 축이 되면서 자기소개서며 면접이며 논술까지. 그 때부터는 수도권 아이들에게 우리 지방 아이들이 뒤처지게 하기 싫어서 부단히 노력했었습니다. 수능 출제를 갔던 것도 정보를 얻어보려고 했던 거였죠. 아이들에게 수능 문항의 출제 원리를 알려주고 준비를 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밤11시까지 야간 수업도 불사했습니다. 학생들은 늘 그런 저를 따라와주었고요. 석사, 박사 과정을 밟은 것도 전문성을 갖기 위한 제 나름의 노력이었습니다.장학사로 전향을 고민하고 승진을 하고자 마음 먹었던 건 권한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위로 갈수록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잖아요? 학생들은 교단에 있는 저에게 늘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했거든요. 근데 그 중에서 교사인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결정해야 될 문제들이었거든요. 그래서 교장이 되기로 했습니다. 좀 더 크게는 교육감이 되려고 마음을 먹기도 했었어요. 그러니 학생들은 또 찍어주겠다고 출마하라며 서로 농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다년간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과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너무나 많고 소중한 추억들이 있습니다. 제가 교직을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이자 제 삶의 근원이며 원동력입니다. 학생들과의 기억을 빼면 저에게 무엇이 남을까요? 언젠가 양산시 백일장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날 글 주제가 '고향'이었어요. 냉큼 내 마음의 고향은 학생이라는 주제로 수필을 적었는데 당선되어 상을 받았드랬습니다. 상금으로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쏘았죠. 니들이 내 고향이야 이러면서 좀 애교도 피우고요. 하하.고3 담임을 할 때는 애들 데리고 양산 내원사에 물놀이를 하러 가기도 하고요. 버너며 후라이팬이며 이고지고 버스타고 걷고. 뻘뻘 흘린 땀을 시원하게 물에 씻어보냈네요. 고3의 스트레스까지도요. 신기산성 등산도 같이 하고. 봄에 쑥도 같이 캐러가고. 자전거도 같이 타러가고. 떡볶이도 같이 만들어 먹고. 하 정말 많이 놀았네요(?).■ 학생과 교사의 중심 역할, 교사와 교장의 교류 역할, 학부모와 학교의 중요 역할을 하는 것이 교감인데, 교감으로 애로사항이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장학사로 일하면서 재정이나 행정, 각종 민원 대응 등 많은 걸 경험했습니다. 장학사 6년의 외로운 그 길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힘을 바탕으로 학생편에서 선생님들 편에서 그리고 학부모의 편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늘 고민하겠습니다. 교육의 현장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막상 두 달을 지내보니 그냥 또 서투른 새네기 교감이네요. 가교의 역할. 누구나 저를 딛고 다음으로 나갈 수 있는 든든한 디딤판의 역할을 해야죠. 저의 서투름이 누군가에게 서운함이 되지 않도록 늘 면밀히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교사 시절에 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교감으로 해야 할 내지는 하고 싶은 바람이나 목표가 있다면.교직의 경력이 늘어가면서 문득 교단에 서있는 내가 아이들의 인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법의 교과 내용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나 자신이 그들의 롤모델이어야 하겠구나 하고 말입니다.그렇게 생각하니 나 스스로 도전을 멈추어선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부단히 저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습니다. 한국교원대 일반대학원 석사과정에 선발된 것, 수능 시험 출제 및 검토 위원으로 다년간 활동한 것, 부산대학교 법교육 박사과정을 수료한 것, 여러편의 논문들, 그리고 장학사 공채 시험에 응시한 것. 이 모든 것은 끝없는 도전을 하는 선생님을 보여주기 위한 저 나름의 노력이었습니다.그리고 그 모든 여정에 학생들의 응원이 있었어요. 이제 이렇게 다시 학생들 곁으로 돌아왔으니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학생 가까이에서 펼쳐보려고 합니다. 제 자녀들을 다 키워놓고 보니 학부모님들의 고충과 애로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공감온도 200도씨로 말이죠.저는 누구나 오고싶어하는 학교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신설이니 아직은 기득권 문화가 없어서 좋습니다.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도 아침 눈을 뜨면 '아 얼른 학교가자'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학교요. 문화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 앞으로 조금씩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교장선생님과 함께 하는 아침 맞이, 점심마다 돌아보는 시설 안전. 아 그리고 이제 학생 상담을 위해 타로카드를 준비했습니다. 교감으로 오기 전에 타로심리상담 1급 자격을 따놓았거든요. 벌써 연애운, 학업운을 보러 오겠다고 줄을 섰습니다.■ 학생들에게 꼭 이 말은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대학의 서열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개인이 어떠한 행복한 경험 속에 삶을 영위하는가 하는 문제가 더 크죠. 우리 사회의 임금격차도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는 통계도 나오고 있고요. 절대적 빈곤은 사라졌습니다.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성공한 인생입니다. 아직 열 일곱 살에게 인생을 말하기는 그렇지만 말이죠.아 그리고 이 기사를 보는 옛 제자가 있다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야들아 선생님이 너무 많이 때렸제? 미안하데이~!"■ 저만의 마지막 공통질문입니다. 묘비명에 새기고 싶은 글이 있다면."Try, try, and try""언제나 도전하고 자주 실패하며 때로는 성공한 사람으로 선한 영향력을 준 이 여기 잠들다."